[풀꽃향기 나눔 캠페인] 도시텃밭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게 하는 아주 소중한 생명의 공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 하는 일/실천 이야기
- 2019. 8. 21. 17:25
【주민자치모임 풀꽃향기가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마을 도시텃밭(싱싱텃밭) 활동을 보고 감동을 느끼신 강남국 작가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방화11단지에 꽃필 화원의 쉼터
(글쓴이 : 강남국 주민작가)
철학자 안병욱은 그의 『행복의 미학』이란 책에서
사람이 흙을 밟지 않을 때 마음의 병이 든다고 했지요.
인류의 역사는 흙과 더불어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흙은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큰 역할을 해왔지요.
우선 흙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먹을 것과 삶터를 제공해 줬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인간은 흙과 더불어 살도록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고대 이래로 사람이 흙을 멀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우리가 사는 이 도회의 잿빛 하늘 아래 흙을 밟고 그것과 가까이 사는 삶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흙을 잃고 사는 것이지요.
생명의 원천 같은 흙을 잃고 산다는 것은 아픔이자 슬픔이 아닐 수 없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기 너무 많습니다.
흙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도시의 삶은 그래서 하루가 다르게 삭막해졌고
사람들의 가슴에선 정과 사랑이 식어가고 있지요.
급기야는 인간성 상실이라는 최악의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도 우리 주변엔 참으로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가만 생각해 보면 벌써 오래전 《전원일기》라는 장수 프로그램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극중에서 복길이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옆집인 김 회장 댁엘 찾아와 이런저런 온갖 얘길 다 나누지요.
간다고 미리 연락하고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김 회장 댁에서도 그냥 그렇게 복길이 할머니가 오시는 것을
식구 모두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고요.
그것이 무슨 흉이 된다거나 문제가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친하면 어느 집이나 다 그랬고 그것이 자연스런 삶의 일부면서 생활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너나없이 본래 그렇게 수천 년을 살았지요.
그것이 곧 우리네 삶이었고 생활이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어머니가 손주가 보고 싶어 아들네를 가려고 해도 미리 연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지요.
이웃에 이사를 와 떡을 돌리려 해도 문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시대입니다.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작품이 생각나는군요.
많은 분이 그 작품을 읽었고 좋다고 했을 때 나는 이 작품이 좋은 것이 아니란 얘길 했었습니다.
그 작품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하지요.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 옛날처럼 허물없이 찾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또 그런 사람이 없기에 이 작품을 읽으며 사람들은 공감을 했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은 시대가 낳은 아픈 상실의 초상(肖像)이라 명명하기도 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잿빛 세상은 참 많은 것을 잃고 살지요.
우선 밟을 흙의 부재는 마음과 정신의 병(病)을 가져왔고
꽃과 나무를 심을 터전을 상실한 삶은 하루가 다르게 사람들의 가슴을 메마르게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방화11단지에 전해진 화원의 쉼터 소식은 우선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옥상에 조성한 도시 텃밭 구상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프로젝트 중의 하나라 생각되었습니다.
너나없이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지역민들에게 우선 흙을 만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공간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흙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차단된 도회의 삶이기에 크지 않은 공간의 활용일지라도
그것은 매우 소중한 것이고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게 하는
아주 소중한 생명의 공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자연은 언제나 넉넉하고 풍성한 것으로 사람에게 주고자 하나
오늘 우리는 땅을 잃고 살기에 그동안 받지 못했고
그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상실하며 살았습니다.
바람대로 여기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별관 옥상에 이렇게 도시 텃밭이 만들어지고
단지 내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며,
그들은 온갖 채소를 비롯한 생명을 가꾸며 정다운 이웃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해 가슴에서만 삭혀야 했던 저들의 삶을
걸쭉한 입담의 수다를 풀어놓을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씨앗을 심고 가꾸며 얻어지는 생의 희열은 또 얼마나 넉넉하고 풍요롭게 할까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받는 기쁨과 행복은 또 얼마나 클까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손에 흙을 묻힐 수 있다는 것은
오늘 잃어버린 본성을 회복하는 길임과 동시에
우리 시대가 상실한 가장 소중한 정과 사랑을 되살리는 역사를 이루는 것이기에
방화11복지관과 연계하여
도시 텃밭을 정성스레 잘 가꾸고 관리하고 있는 주민자치모임 풀꽃향기의 활동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여겨집니다.
이제 이곳에서 만나 오늘을 사는 이웃들은 잃어버린 자연을 만나게 될 것이고
허물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겠지요.
손길이 닿는 곳마다 피어날 정과 사랑의 언어는 우리 마을을 환한 화원의 꽃동산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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