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들, 똑똑] 1104동_이 씨 어르신 복날잔치
- 하는 일/실천 이야기
- 2022. 8. 31. 19:04
(글쓴이 : 정민영 사회복지사)
동네사람들은 지역주민이 동네잔치를 구실로 이웃과 인정을 나누며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복날 잔치 제안
이 씨 어르신은 작년에 방화2동으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동네 이웃과 어울리고 가깝게 지내고 싶으신 마음이 크셨습니다.
당신이 먼저 인사도 건네고 다가가고 싶었지만 어려우셨다고 합니다.
복날 잔치를 기회로 어르신의 이웃 관계를 잘 돕고 싶었습니다.
어르신은 동네에서 잔치를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동네사람들 사업에 대한 의미와 방법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여름날의 낭만잔치’ 책과 이전에 했던 잔치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책과 사진을 보여드리며 잔치의 과정과 감동을 전달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서로 인사하고 음식도 나눠 먹고 하면 얼마나 좋아”
어르신은 소박하게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기로 하셨습니다.
복날 잔치 준비 회의
어르신께 어떻게 복날 잔치를 하고 싶으신지 여쭸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처럼 수박 한 조각씩 잘라서 나눠 먹고 막걸리 한 잔씩 해야지.”
복날이니 오이냉국이나 콩국수, 화채 등 여름철 음식을 떠올렸지만
음식 솜씨가 없으시다며 간단한 요리도 부담스러워하셨습니다.
어르신이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방식을 의논했습니다.
고민 끝에 여름 제철 과일과 식혜를 이웃과 나눠먹기로 했습니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하고 나눠먹는 것도 좋은데 이왕이면 1층 주민 쉼터에서 여기 사는 사람들 다 초대해서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처음에는 같은 층에 사는 이웃들과 나누기로 했었지만 어르신께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 더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셨습니다.
잔치 방식, 장소, 음식도 모두 어르신이 생각하셨습니다.
초대장 작성
“어르신이 직접 초대장을 쓰셔서 4동 주민들에게 전달해 보는 거 어떠세요?”
“나는 글씨 잘못 써. 선생님이 대신 써서 갖다 줘.”
“여기 문고리 엽서에 잔치 날짜와 장소, 인사말 정도만 간단하게 써서 문에 걸어놓고 오면 좋을 것 같아요.”
미리 준비한 문고리 엽서를 보여드리니 거절하시다가 이내 펜을 잡으셨습니다.
여기서 어르신의 강점을 또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르신은 글씨를 매우 잘 쓰셨습니다.
또박또박한 글씨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엽서 한 장에 꼭 필요한 내용과 어르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들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어르신이 저보다 글을 훨씬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나중에 저랑 같이 초대장을 전달하러 가세요.”
복날 잔치 준비
잔치 전날에 어르신이 직접 동네 마트에 가셔서 장을 보셨습니다.
수박 크기부터 모양, 소리, 색깔까지 꼼꼼하게 비교하시며 고심 끝에 수박 1통을 고르셨습니다.
수박 옆구리 몇 번 두드리고 고를 수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맛나고 잘 익은 수박 한 조각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셨습니다.
수박 1통을 고르시고 또 어떤 과일을 사면 좋을지 고민하셨습니다.
“방울토마토를 사야겠다. 여러 명이 간단하게 나눠 먹기가 좋잖아.”
혼자 드시는 게 아니라 이웃들과 나눠 먹기 편한 과일을 생각하셨습니다.
수박과 방울토마토에 이어 참외와 식혜도 꼼꼼하게 고르셨습니다.
“앉아서 이야기 나누니까 주전부리도 사면 좋지 않을까? 저거 좋네.”
삼삼오오 모여 먹기 좋다며 건빵을 선택하셨습니다.
어르신이 건빵을 고르신 이유가 의미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소망처럼 어르신도 과일 조금 나누고 끝나는
잔치가 아니라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인정을 나누는 모습을 바라셨습니다.
초대장 전달
어르신은 잔치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준비하신 후에
곧장 초대장을 들고 한 씨 어르신 댁으로 달려가셨습니다.
막상 문 앞에 서시니 먼저 말을 걸기가 쑥스러우셨나 봅니다.
사회복지사가 먼저 한 씨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두 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선생님이 인사를 시켜준다고 해서 왔어요. 저는 여기 000호에 사는 이00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저는 한00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여덟이에요.”
“나보다 형님이네. 그래도 같은 70대니까 친구 하면 되지 뭐.”
“내일 수박 한 조각 드시러 오세요.”
이 씨 어르신은 손수 쓴 초대장을 한 씨 어르신께 내미셨습니다.
한 씨 어르신이 활짝 웃으시며 초대장을 받으셨습니다.
“꼭 갈게요. 안 그래도 여기 선생님이 위층에 사는 사람이 잔치를 한다고 놀러 오라고 해서 꼭 간다고 했어요. 나도 요즘에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 죽겠어요.”
“저도 그래요. 내일 꼭 오세요.”
“선생님 내가 약 먹고 오전에는 자고 있으니까 잔치 시작할 때 나한테 꼭 전화해 줘요. 내가 전화 소리 들으면 깨니까. 일어나서 갈게요.”
꼭 전화 달라고 신신당부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복날 잔치 당일
약속한 시각보다 일찍 오셔서 돗자리를 펴고 잔치를 준비하셨습니다.
“수박을 어떻게 잘라야 하나. 내가 수박을 통으로 잘라본 적이 없어.”
어르신은 난생처음 수박을 잘라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손은 누구보다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이셨습니다.
나눠 먹기 좋은 크기로 수박을 자르셨습니다.
잔치를 준비하다 보니 하나둘씩 주민들이 모였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있으니 지나가던 주민들도 오셨습니다.
이 씨 어르신은 처음 본 분들이 많이 오시다 보니 잔치 초반에는 사회복지사의
등을 살짝 미시며 수박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신께서 수박 접시를 들고 오시는 분들에게
수박 한 조각을 건네셨습니다.
컵을 가지고 다니시며 식혜와 음료도 대접하셨습니다.
"저는 여기 000호에 사는 이00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저는 여기 000호에 사는 이00입니다. 인사하고 지내요."
이번 잔치를 통해 어르신이 처음 인사한 이웃이 참 많습니다.
어색했던 옆집 아저씨와도 처음 눈인사 나눴습니다.
평소에 다가가고 싶었는데 어려웠던 이웃과도 잔치를 기회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씨 어르신 덕분에 복날 잔치를 풍성하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가도 괜찮아. 나는 더 있다가 갈 거니까 복지관 들어가요."
무더운 날씨에도 어르신은 오랫동안 동네 이웃과 이야기 나누셨습니다.
감사 인사 및 평가
이 씨 어르신께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감사장과 머그컵을 준비했습니다.
감사장과 함께 어르신께 머그컵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잔치 때 어르신이 종이컵을 들고 다니시며 주민들에게 식혜를 따라주시던 모습이 선명합니다.
이전에 어르신 댁에 방문했을 때 컵이 하나밖에 없던 기억이 났습니다.
어르신이 머그컵을 사용하시며 정겨웠던 복날 잔치를 기억하시기를 바랐습니다.
동네 이웃들이 어르신 댁에 놀러와 어르신과 차 한잔 나누며 지내시는 모습을 소망했습니다.
"뭘 이런 거는 가져왔어요. 잘 쓸게요. 진짜 고마워요."
어르신께 감사장을 소리 내어 읽어드렸습니다.
어르신은 한참 동안 감사장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여러 번 읽으셨습니다.
어르신이 어떤 생각을 하실까 궁금했습니다.
"어르신이 한참을 보셔서 제가 실수를 했나 긴장했어요.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그냥 잔치하길 잘했다 싶어서.."
어르신의 짧은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나눔주민(이 씨 어르신) 인터뷰
Q. 사회복지사가 복날 잔치를 제안 드렸을 때 어떠셨어요? A. 좋지~ 엄청 좋았어요. 아니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어울리고 인사하고 살면 얼마나 좋아요. Q. 장도 보고 초대장도 만들고 직접 준비해서 잔치해 보시니 어떠셨어요? A. 좋았어요.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니까 힘든 것도 없었고. Q. 복날 잔치 후에 새롭게 알게 된 이웃이나 달라진 점이 있으세요? A. 여러 사람하고 인사 많이 했죠. 6호 아저씨랑 친하게 지내요. Q. 이번 복날 잔치처럼 동네에서 이웃과 꾸준히 나누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A. 세상은 혼자 살 수가 없잖아요. Q. 다음에도 잔치에 참여할 마음이 있으세요? A. 당연하죠. 나는 좋지요. |
참여주민(구 씨 어르신, 조 씨 어르신) 인터뷰
Q. 복날 잔치 때 새롭게 알게 되거나 가까워진 이웃이 있으세요? A.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없고 잔치 때 처음 본 사람은 있었지. Q. 이번에 4동에서 잔치한 거처럼 동네 곳곳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잔치를 하면 동네에 나누는 문화가 확산이 될까요? A. 아무래도 그렇지. 도움이 되겠지. A. 좋지. Q. 어르신도 다음에 잔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세요? A.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못해. 조금만 젊었으면 할 수 있지. |
감사 인사 후에 몇 주가 지나고 어르신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선생님 줬던 컵 6호 아저씨한테 선물해 줬어.”
“잔치 때 알게 된 분이시죠?”
“그래 그때 만나서 인사하고 지내지.”
이번 복날 잔치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6호 아저씨와 이제는
인사도 나누고 선물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셨습니다.
* 직선의 시선과 곡선의 시선
이 씨 어르신의 복날 잔치에 함께 하면서 예전에 김세진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회사업가는 직선의 시선이 아니라 곡선의 시선으로 당사자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집에 와서 청소 좀 해줘요."
"아니 사람이 이사를 오면 집 수리를 잘해야지 왜 이렇게 제대로 일을 안 해."
제가 처음 이 씨 어르신께 들었던 말입니다.
복날 잔치를 하기 전까지 제가 알던 어르신은 갖가지의 불평불만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늘 곤란하거나 무리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강점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르신의 잔치를 가까이서 보며 알았습니다.
어르신은 동네 이웃들에게 섬세하게 마음을 쓰는 분이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인사하고 나누고 어울려 살고 싶은 마음이 크셨습니다.
글도 잘 쓰시고 한문에도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으셨습니다.
당사자의 강점을 보는 사회사업가라고 자부했는데 부끄러웠습니다.
복날 잔치를 돌아보면서 저의 시선을 자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르신은 강점이 없는 게 아니라 제가 직선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건 아닐까요.
눈에 보이는 문제만 보는 직선의 시선이 아니라 문제 너머에
감춰진 다른 모습을 보는 곡선의 시선을 잃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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