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사랑방] 스마트폰교실 나들이 이야기

글쓴이 : 이미진 사회복지사

 

올해 하반기부터 스마트폰교실 기초반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이 수업은 복지관에서 실습을 했던 손가영 학생이 강사로 함께하며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수업을 시작하며 담당자와 손가영 학생은 단순히 스마트폰 기능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참여자분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관계를 맺는 수업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수업을 구실로 삼아 나들이를 계획했습니다.

 

나들이에서는 그동안 배운 길찾기 기능을 활용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공유해보기로 했습니다. 또 나들이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음식을 조금씩 준비해와 나눠 먹으며 자연스럽게 대화 나누는 자리로 삼고자 했습니다.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웃는 관계의 시간이 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손가영 학생은 참여자분들과 함께 어디로 가면 좋을지,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어떻게 역할을 나누면 좋을지 하나하나 의논하며 준비했습니다. 참여자 한 분 한 분이 주체가 되어 의견을 보탰고, 그만큼 기대도 한껏 커져갔습니다.

 

드디어 919, 나들이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침부터 잔뜩 흐리던 하늘은 오후가 되자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어떻게 할지 정해서 참여자분들에게 통보하는게 아니라 나들이 준비처럼 약속 시간에 모여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참여자분들과 상의하기로 했습니다.

 

혹여 대안이 없다면 무리하지 않고 나들이를 다음 주로 미루고, 오늘은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며 나들이 준비의 시간으로 삼자고 손가영 학생과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참여자분들에게 의견을 여쭤보자 조호석 어르신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요! 바로 앞이에요.”

 

나의 개인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속으로 오히려 좋아!’를 외쳤습니다.

 

조호석 어르신 댁에 도착해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 놓고 둘러앉았습니다.

자연스레 살아온 이야기, 지금 사는 동네 이야기, 가족 이야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스마트폰 배우기에 집중하느라 나누지 못했던 삶의 이야기들이 오가며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지만, 이날은 스마트폰보다도 사람을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비 때문에 계획은 달라졌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더 따뜻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웃음과 신뢰가 쌓여간 919, 소박한 나들이이자 뜻깊은 집들이가 되었습니다.

이 하루가 참여자분들 마음속에 오래 남아,

앞으로 스마트폰교실을 이어가는 든든한 관계의 바탕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날을 함께 준비하고 경험한 손가영 학생의 기록을 공유합니다.

 

글쓴이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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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금요일

919일 금요일은 스마트폰 초급반 사람들이 기대하던 나들이 날입니다. 매 수업 끝나기 5분 전에 함께 나들이 계획을 세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당일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 예보가 들렸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기는 것이기에 반갑지 않은 예보였습니다. 나들이를 진행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이미진 팀장님과 다른 계획도 세워보고, 어르신들과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공희선 님과 짧은 담소
수업이 있는 날에도 공희선 님은 일찍 도착하는 모범생이십니다. 나들이 날도 역시나 제일 먼저 도착하셨습니다. 도착하신 걸 확인하고 달려가니 늘 저에게 보여주시는 환한 미소와 함께 비가 오네요~” 라며 반겨주셨습니다. 들고 있는 짐도 있고, 서서 기다리기에 불편하실 듯하여 4층으로 올라가 소파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무릎이 아파서 원래 오후 2시에 병원에 가야해요. 그런데 오늘은 나들이가 있으니까 오후 5시로 시간을 미뤄두었어요.”
공희선 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들린 한 마디입니다. 기존 일정이 있음에도 나들이를 위해 예약 시간을 미룬 점에서 나들이에 대한 기대가 느껴졌습니다.
이외에도 공희선 님이 친구분들을 만나러 용산에 자주 오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용산에 사는 저에겐 굉장히 반가운 이야기처럼 들렸기에 짧지만 즐거운 담소가 이어졌습니다.
 
# 나들이 대신 조호석 님의 집에 초대받았어요
12시가 되자 모두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다른 분들은 저를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비가 오는데 공원에 갈 수 있을지 물어보셨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가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기에 참여자분들께 갈만한 장소가 있을지 여쭤보니 방화 근린공원에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이동과 활동에 불편함이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복지관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말씀드리려는 순간, 그럼 우리 집으로 가요. 바로 앞이에요.”라는 조호석 님의 한마디가 들렸습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집에 초대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아침부터 걱정하던 일이 순식간에 해결된 것입니다.
우와~ 집에 초대해 주시는 거예요?”
비도 안 맞고, 우리끼리 편하게 얘기 나눌 수도 있겠네요!”
라며 다른 분들도 환호했습니다. 장소가 결정되자 곧바로 조호석 님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 주셨고, 다 같이 따라서 이동했습니다.
 
# 우리끼리 도란도란 나들이
조호석 님께서 상을 내어주시고, 주위에 둘러앉아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넓게만 느껴졌던 상이 점점 채워지는 걸 보면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족해졌습니다.



누가 무엇을 가져왔는지, 어떻게 준비했는지 등 나들이를 준비하고 기다려온 마음이 온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공희선 님께서는 밥 대신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과일을 깨끗이 씻어 지퍼백에 하나하나 나눠 담으셨고, 정석인 님은 직접 말아 만든 집 김밥과 따뜻한 어묵탕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조호석 님께서는 전날 몸살로 인해 직접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 굉장히 넉넉한 양의 김밥과 직접 무친 오이지 반찬, 꽈배기를 사 오셨습니다. 모두의 도시락에는 엄청난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먹는 사람을 생각해서 모두가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지퍼백마다 나눠 담아 오신 것, 서늘한 날씨에 맞춰 따끈한 국물을 준비하신 마음, 꽈배기를 한입 크기로 잘라서 담아 오신 세심한 배려까지. 어르신들께 이미진 팀장님도 오신다고 전해드리니 가장 예쁜 모양의 음식들을 골라 따로 덜어놓자는 의견까지 모두 한 마음이었습니다.

정석인 님이 도시락을 드시다가 콜라를 계속 찾으시길래 콜라를 좋아하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평소에는 잘 안 드시는데, 나들이에 간다고 하니 어릴 적 소풍에 가던 것이 생각나서 소풍 가는 기분으로 콜라를 가져오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함께 참여하는 나들이 하나로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고, 그 추억 위로 새로운 기억이 덧붙여질 생각을 하니 뿌듯했습니다.
늘 별관에서 수업에만 집중하다 대화를 나눌 틈이 없었는데, 오늘 보니 다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 최근에 있었던 힘든 일과 좋았던 일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초급반 수업을 들으면서 어땠는지 감상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얻어가는 게 하나라도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앞으로도 계속 초급반에서만 수업을 듣고 싶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내년에는 제가 학교를 졸업하기에 초급반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임에도 굉장히 놀라고 아쉬워하셨습니다. 참여자분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초급반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감동했습니다.
 
# 관계가 확장되는 순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이를 묻기도 했는데, 초급반에 계신 중년남성 두 분이 동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희선 님은 최근에서야 11단지로 이사를 오셨기에 아는 이웃이 적으시고, 정석인 님은 11단지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셨지만, 몸이 불편하고 밖에서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워하시기에 알고 지내는 이웃이 잘 없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은 공통점이 많아서인지 급속도로 친밀감을 느끼셨고, 서로 옆 동에 사는 것도 알게 되자 정석인 님께서 공희선 님을 집에 초대하셨습니다. 나들이가 끝나면 곧바로 자신의 집에 가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이야기를 더 나누며 시간을 보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스마트폰 초급반 일원에서 함께하는 이웃으로 관계가 확장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공희선 님의 친화력과 정석인 님의 추진력이 합심하여 시너지를 낸 것입니다.

작년부터 상상만 해 오던 나들이였는데 이번 기회에 직접 참여하고 실현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비가 와서 계획했던 것이 틀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오히려 비가 온 덕분에 이 모든 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초급반에 대한 애정이 한층 더 깊어졌고, 남은 기간에도 더욱 열심히 임하고 싶은 동기 부여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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