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림책] #4 선생님, 그림 집에서도 그려보고 싶은데 재료가 없어요.
- 하는 일/실천 이야기
- 2019. 10. 2. 10:04
(글쓴이:정한별 사회복지사)
장재희님께서 그림 그리시는 활동이 집에 가서도 생각나셨나봅니다.
집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연습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재료가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복지관에 나와서 얼마든지 미술 재료를 사용해도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장재희님께서는 복지관의 시간이 아닌 당신이 원하는 시간에 연습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집에서도 연습하면 좋을텐데 재료가 없어요.”
장재희님의 바람이 구체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미술 수업이 재미있어서 두 시간이 아쉽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몇 주 후에 장재희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크레파슨가 색연필인가. 저런 색깔 있는 것들은 어디에서 구하면 되나요?
동네 문구점 가보았는데도 저렇게 색깔이 많은 물건은 없던데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늦게 알게 된 배움이 귀한 만큼, 실력을 집에서 더 쌓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장재희님. 이렇게 색깔이 많은 파스텔은 작은 문구점에서 구하기 어려워요.
저는 강서구에서 제일 큰 문구점 가서 샀어요.”
“나는 그런 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어머니 시간 괜찮으시면 관심 있는 분들 더 모아서 같이 한번 가 볼까요?”
그렇게 장재희님, 고경자님과 강서구에서 가장 큰 창고형 문구점 수정문구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수정문구는 없는 것이 없는 문구점입니다. 아이들의 천국이자 지옥입니다.
일단 들어서면 없는 것이 없으니 천국이고 한번 들어서면 금방 나오지를 못하니 지옥입니다.
장재희님께여기를 보고 얼마나 감탄하실까 괜히 제가 두근거렸습니다.
또 진작 소개했으면 재료들을 금방 구했을 텐데
그동안 온 동네를 여기 저기 다니셨을 것을 생각하니 죄송스럽기도 했습니다.
수정문구는 정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컸습니다.
어르신들은 파스텔 코너에서 멈추어 36색을 살 것인지, 48색을 살 것인지 신중하게 고민하셨습니다.
스케치북은 낱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살 것인지,
스프링으로 묶여 있는 것을 살 것인지 진지하게 서로 묻고 답하며 고르셨습니다.
평소라면 문구점의 직원들도 손님이 어떤 물건을 고르든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데
어르신들께서 미술용품을 직접 고르고 계시니 의아하게 생각하며
더 친절하게 물건의 차이들을 설명해주기도 하였습니다.
파스텔 세트 하나, 스케치북 두 권, 색연필 세트 하나
고경자님은 온 김에 한글 공부를 할 수 있는 공책도 두어권 구입하셨습니다.
장재희님은 간장병, 매실병, 참기름병, 들기름병 구분할 수 있는 견출지도 구입하셨습니다.
연필은 안 사셔도 되는지 여쭈니
이미 옆집(1506호)에서 장재희님 미술수업 한다고 기념으로 연필 몇 자루 사주어서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3동에 미술수업이 재미있다고 소문이 났나 봅니다.
돌아오는 길
장재희님은 만족스러우면서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여기 문구점이요, 내가 아는 곳이었네. 이곳이 예전 188번 종점이었잖아요.
멀지도 않은데 나는 평생 여기 살면서도 이런 데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요.”
고경자님도 한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예전에 손녀랑 같이 와본 적이 있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어.
앞으로 동네 문구점에 없는 것 필요하면 이제 생각해서 여기로 와야지.”
어르신들은 동행해준 사회복지사의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니냐며 미안해하셨습니다.
또 문구 백화점을 소개해주어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어르신들께서 그림책 그리기에 이렇게 열심히 참여해주시고 이것을 넘어서 당신 것으로 만들어 나가고 계십니다.
‘내가 했다, 잘 해냈다.’ 이야기하실 수 있지 않을까.
주 1회 2시간 활동이 기다려지는 시간이자, 미리 비우게 되는 시간이자,
다시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오늘 문구점 마실을 통해 우리의 소망이 이뤄질 수도 있겠구나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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