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소박하지 않은 추석 잔치

글쓴이 : 원종배 사회복지사

 


와그작와그작 전 부쳐 먹는 소리


추석, 고향 내려가기 힘든 주민들이 많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

건강이니, 돈이니, 연락두절이니, 먹고살기도 바빠 당장 옆집 사람 얼굴도 잘 모르는 세상입니다.

 

이런 추석은 이웃과 인정을 나누기에 딱 좋은 기회입니다.

 

김미경 과장님께서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11단지 주민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추석, 근사한 선물도 좋지만 이웃과 인정을 더 살려야 했습니다.


권대익 주임님께서 11단지 주민들이 중심이 돼서 전 부쳐 먹는 소박한 추석 잔치를 제안해주셨습니다.
추석을 구실로 이웃과 인사하며 맛있는 음식도 나누고 따뜻한 명절을 만들 좋은 기회였습니다.

 

 

 

추석 잔치 제안하기

 

11단지 주민인 어르신학당 김옥수 반장님이 가장 먼저 떠올라서 추석 잔치 제안해보았습니다.


“같이 전 부쳐 먹고 이야기 나누는 건 좋은데, 우리 집에서 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워”


복도에서 진행하는 것도 제안해드렸습니다.

하지만 전 부치는 냄새가 아파트에 퍼지는 게 걱정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1104동 1층에 살고 계시는 구효순님이 생각났습니다.

 

구효순님은 항상 아파트 1층 로비에 혼자 앉아계셨는데,

오고 가는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주민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집에만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옥수 반장님과 함께 추석 잔치 제안하기 위해 구효순님을 찾아뵀습니다.

김옥수 반장님과 구효순님은 평소 언니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구효순님께 소박한 추석 잔치를 제안해보았습니다.


“아이고! 너무 좋네! 우리 집은 아침에 요양보호사가 있어서 할 수 있어요! 너무 재밌겠네~”

 


추석행사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 생년월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언니가 몇 년생이었더라?”


“나? 39년생 1월 18일”


“언니가 39년생이라고? 내가 주민등록상 39년인데??”


“두 분 동갑 친구셨네요!”


“어머 난 그것도 모르고 처음부터 언니언니 했구먼”


“난 처음에 언니라고 부르라 한 적 없는데~”


“그럼 오늘부터 말 놓으시는 거예요?”


“아이~ 그냥 언니라고 해야지요. 어떡해 그럼 처음부터 언니라고 했는데”

 

 

그렇게 김옥수 반장님, 구효순님의 서열 정리가 일단락되며

추석 잔치 준비를 위해 다음 만날 시간을 정하고 헤어졌습니다.


가짜? 언니 김옥수 반장님도 오늘 신이 나셨는지,

에어로빅할 때의 가벼운 몸짓으로 서둘러 집으로 가셨습니다.

 

 

며칠 뒤 추석 잔치 준비를 위해 김옥수 반장님을 복지관에서 만났습니다.

얼굴이 아주 어두워진 이유를 여쭙자 최근 건강이 악화되어

추석잔치를 함께 못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추석 잔치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 잘 지키라고 안심시켜드렸습니다.

 

 

 

다시 찾은 구효순님

 

추석 잔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손혜진 주임님과 구효순님 댁으로 갔습니다.

구효순님은 김옥수 반장님과 함께하지 못해 아쉬워하셨습니다.


구효순님은 1층에 살고 계시다 보니 추석엔 현관을 꼭 닫고

베란다 너머로 밖을 구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창문 밖으로 손자 손녀들이 가족들과 손잡고 지나가는 걸 보면

속상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셨습니다.

 

추석 잔치 함께할 수 있는 이웃들이 계신지 여쭤봤습니다.

 


“여기 1층 사는 할머니랑 7층 사는 아저씨 초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내가 한번 전화해볼게.“

 

“아저씨! 나 109호! 다음 주에 뭐해요? 화요일! 응. 그날 우리 집에서 전 부쳐 먹는데 함 와요~?"

 

 

 

구효순님이 추석 잔치 함께할 이웃을 초대하고 있는 모습

 

 

 

전 부칠 수 있는 재료가 집에 있는지 여쭤봤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있어야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부추랑 양파는 꼭 필요해요.“


다음날 아침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계실 때 다시 오기로 했습니다.


구효순님의 설렘 가득한 들뜬 표정을 보았습니다.

추석 행사 제안해드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렘 가득 전 먹는 날

 

다음 날 아침 일찍 구효순님 댁에 가보니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와계셨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부족한 재료를 알려주셔서 애호박과 부추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 빚은 개화산역점에서 준비해주신 식혜와 수정과도 받아왔습니다.


구효순님은 부엌에 있는 요양보호사님을 멀찌감치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나는 잘못 만들 거 같아. 우리 선생님이 알아서 잘해줄 거에요.“


”구효순님~ 그래도 오늘은 구효순님 집에서 추석 잔치도 하고 함께 전 먹는 날이잖아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니라 구효순님이 손님도 직접 초대하셨잖아요!

옆에서 조금이라도 도와주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구효순님은 어설프지만 보조쉐프처럼 옆에서 요양보호사님을 도와 전을 만드셨습니다.

 

구효순님은 손님 맞기 위해 예쁘게 머리도 빗고, 양치도 하셨습니다.

 

 

 

구효순님이 손님맞이를 위해 양치하는 모습

 

 

 

 

요양보호사님과 구효순님은 두 가지 버전의 전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청양고추가 들어간 매운맛과 고추가 안 들어간 순한 맛의 전이 있었습니다.

 

매운맛 전이 먼저 완성돼서 요양보호사님께서 저희 먹으라고 한 접시 주셨습니다.

평소 매운 걸 잘 먹지 못했지만, 요양보호사님과 구효순님의 정성이 들어간 전이었습니다.

초대해주신 두 분께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이 아주 매웠지만 구효순님이 주신 식혜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전 만드는 구효순님

 

 

 

 

손님

 

전 냄새가 집안에 풍기기 시작하자

구효순님의 첫 번째 손님이 반갑게 웃으시며 방문하십니다.
7층 사는 아저씨라고 말씀하신 전삼식님 이었습니다.
구효순님이 전삼식님에게 식혜를 대접하셨습니다.


전삼식님이 전을 몇 점 드시더니 구효순님에게 고맙다며 인사하셨습니다.


“구효순씨, 오늘 이렇게 초대해줘서 고마워! 더 먹고 싶은데

내가 이제 밥을 먹으러 가야 돼. 남은 전 챙겨놓으면 내가 이따 집에 가면서 가져갈게~”

 


전삼식님이 가시고, 새로운 이웃들을 초대하기 위해

구효순님이 복도로 나오셨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이웃분들이 전 냄새를 맡고 구효순님 댁으로 들어오십니다.


1층에서 오고 가며 인사했던 6층 어르신,

공항 성당에 함께 다니는 3층 어르신,

같은 1층에 사는 옆집 이웃 유득례님도 오셨습니다.


1층에 사는 구효순님은 이점이 많았습니다.

 

 

 

화려한 추석 잔치

 

어느덧 구효순님의 방은 전 냄새와 노랫소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중간에 사진 촬영을 하러 잠깐 들른 권대익 주임님도 노래 한 곡 부르시고 가십니다.


“야아~ 야이 야아~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목소리가 크고 멋진 권대익 주임님의 노래에 어르신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기가 죽었지만, 옆에 있던 손혜진 주임님과 남행열차 불렀습니다.

 

완창하니 뿌듯했습니다.

 

 

전을 드시던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전이 너무 맛있다며

구효순님과 요양보호사님을 칭찬해주셨습니다.


“어제 먹은 전보다 훨씬 맛있다! 진짜 맛있어!”
“맛있는 음식 준비하고 우리 초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유득례님이 구효순님 입에 전 한 점 넣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해~”

 

 

유득례님은 구효순님과 평소 왕래하며 이야기를 자주 나누던 사이었습니다.

투박한 성격의 유득례님은 구효순님이 걱정되셨는지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대신해 전을 만드셨습니다.

 

전을 만드시는 유득례님의 뒷모습에서 구효순님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6층 어르신은 구효순님을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이 양반, 다리 아파서 멀리도 못 나가잖아.

아파트 입구에서 사람들한테 인사하고 나도 지나갈 때마다 손잡고 인사해서 기억나.

오늘 처음 집에 놀러 왔는데 신나게 놀고 갑니다.~”

 

 

구효순님 집, 방 한가운데 도란도란 둘러앉아 노래 부르며 신나게 전 먹으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됐습니다.


“잘 가고 또 놀러와!”
“언니, 다음에 또 올게~”


인사하는 구효순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헤어지기 전 다 함께 근사하게 사진도 찍고 다음에 나누기로 약속했습니다.

 

 

 


화려한 추석 잔치

 

 

 

추석 잔치가 비록 소박하고 인원은 적었지만,

정과 마음을 더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당사자의 곳에서 함께 하고 제안 드리니

적은 힘으로도 이웃과 인정이 풍성하고 화려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소박한 추석 잔치는 이웃들이 마음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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