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림책] #8 전시는 또 처음이네!(긴글)

(글쓴이:정한별사회복지사)

오후 2시에 만나 전시회를 보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전시회 보러 나온 김에 인근 공원에서 야외 수업하기로 했습니다. 
나들이에는 음식이 빠질 수 없지요.

오실 때 각자 먹을 것 하나씩 가져오기로 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좋겠다!

 

나들이 할 우장산 공원도 사전 답사 다녀왔습니다. 

이지희 선생님 전동 휠체어가 들어가기 좋은 평지도 골라 두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전날 태풍 ‘미탁’이 예상보다 빨리 북상한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야외수업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전시회 다녀온 후 그냥 복귀하여 바로 수업을 시작하기는 아쉬워서 
준비하기로 했던 간식은 원래대로 가져오기로 하였습니다. 
(바뀐 소식 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인간 파랑새가 되어 전화 돌려보고 계속 안 받으시면 직접 댁으로 찾아가거나 
잘 아시는 분 편으로 전달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각은 2시였습니다만 어르신들은 1시 40분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약속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모두 모여 출발이 더욱 빨라졌습니다.  
김미경 과장님께서 동행해주어 두 대의 차량으로 나누어 수월하게 갔습니다. 

 


강서 문화원 가는 길 
약 20분정도 걸리는 짧은 길에 같은 차에 탄 고경자님과 깨 쏟아지는 대화를 실컷 나누었습니다. 

 

 

“별이 운전 잘 하네. 앞에 차(김미경 과장님 운전)도 잘 따라가네. 그래. 이렇게 여기 박고, 저기 박고 사고 내고 하면서 배우는 거야. 내 차 사기 전까지는 이렇게 회사 차로 열심히 다녀서 실력을 쌓아 둬야지.”


삶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남자는 생활력만 강하면 돼. 살면서 재미있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좀 유머가 없는 남자라도 괜찮아. 생활력 강한 사람이면 뭐든 할 수 있지.” 

 


어르신들과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 프로그램으로 만나는 관계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항상 삶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림책뿐만 아니라 도서관 일자리에서도 그렇습니다.
제가 어디에 사는지, 애인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할지 항상 물어보십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애매하기도 하였습니다. 
젊은 세대의 계획과 어르신 세대의 신조가 상충하는데도 수긍해야 하니 불편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정한 수준과 선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물 흐르듯이 이야기 나누게 됩니다. 어르신들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제게 물어봐주시니 때때로 대화를 통해 위로 받는 기분을 느낍니다.  

 

 



강서 문화원에 도착하여 전시회를 연 선생님께 꽃을 선물하였습니다.

 

 

"어머. 우리는 그것도 생각을 못했는데 고마워요 선생님."(장재희님) 

 

내 그림이구먼

 

 

무릎이 너무 아프지만.. 내가 그린 그림 앞에서 한 컷 찍어야겠어요.

 

이건 어떻게 그린 거래요?

 

본격적으로 작품들을 관람하였습니다. 
고경자님, 한숙자님, 장재희님은 우리의 그림이 이 근사한 전시회에 걸려있다는 것이 놀라우신지 그것을 가장 먼저 보셨습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 오정희님과 이막내님은 다른 작가들의 미술 작품들부터 보셨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이에요(이지희 선생님 작품)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이 무엇인지 여쭈니 성당 다니시는 두 어르신은 '연필로 그린 마리아'라고 하셨다. 


전시회라는 특성상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다리 아픈 것도 잊으신 채 오랜 시간을 관람하셨습니다. 
크지 않은 전시 공간 속에서 어르신들 편한 속도와 순서로 혼자 또는 짝과 함께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시회라니. 말도 안돼요. 잘 못 그린 그림을 어떻게 전시해요. 난 싫어요.”라고 말씀하시던 어르신들이 전시회에서 그림을 만나니 새롭게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보니 자극이 되네. 이렇게 그릴 수도 있네.
나도 이렇게 그려보고 싶어지네.”(오정희님) 

 


 

작품 감상이 끝나고 작가의 한 마디를 적어 작품 옆에 붙여두었습니다.  
이지희 선생님께 한 마디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날도 날인데 커피 한 잔 할까요?”
오정희님께서 간식 타임을 제안해주셨습니다. 
전시회 장소가 좁아 복지관에 돌아와서 즐기기로 하였습니다. 

 


 

한 두분씩 간식을 꺼내니 금새 테이블이 가득합니다. 

 

풍성풍성

 

나는 지금까지 전시회를 한 번도 못가봤었네.

 


종류도 다양합니다. 

오도독 에이스부터 애기팔뚝만한 바나나, 설탕에 절인 사과, 소쿠리에 담긴 고구마, 살살 녹는 옥수수빵. 

간식 하나에 이야기 하나씩입니다.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에는 중간 심이 없이 너무 부드러워서 모두들 감탄했습니다. 

오정희님의 보온병 커피는 방금 탄 커피보다 더 고소했습니다. 

제가 가져온 옥수수빵은 드시더니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십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막내님을 생각하며 간식 구매하신 장재희님의 이야기도 들려드렸습니다. 
간식 전달해준 원종배 선생님도 같이 앉아 풍족한 간식 나눠먹으며 오순도순 전시회 끝난 소감을 공유했습니다. 

 

 

“난 이런 전시회 자체가 처음이에요. 이런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가까운 곳에서도 미술을 볼 수 있다니. 내 그림이 걸려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요. 다 선생님 덕분이죠. 내가 혼자 했더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장재희님) 

“다른 사람들 보니까 진짜 잘 그리데. 나도 그런 그림을 언제 한 번 꼭 그리고 싶은데. 작품들을 실컷 보니까 참 좋습니다.”(오정희님) 

“몇 몇 작품들은 보고 가기 아까워서 사진도 찍었어요.”(이막내님) 

“좋았지 뭐.”(한숙자님) 

“아이구.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이지희 선생님만 고생했나. 한별 선생님도 고생했어요. 맨날 전화 붙들고 뛰어 댕기고. 하하”(고경자님) 

“어머니들 이렇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전시회에 전시하는 다른 작가들이 어머님들 그림보고 감탄했어요. 어떻게 그림 안 그리신 어르신들이 이렇게 잘 그리실 수 있는지 정말 다들 놀라셨답니다. 늘 빠지지 않고 이렇게 열심히 해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지요.”(이지희 선생님) 

 


오늘 같은 날은 수업을 해야 할까요? 
전시회도 보고 간식도 먹었으니 이만 접어야 할까요?

간식 정리하고 그만 집에 가자는 분도 계셨으나 
조금이라도 할 것은 하고 가자는 분들이 대다수여서 수업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미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적당히 한 시간 정도 진행될 줄 알았으나 
두 시간 꽉 채워 하셨습니다. 
체력이 대단하십니다.

이젠 정말 끝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선생님과 그림 의논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집에 가실 때가 되었다고 말씀드려도 이것만 봐주고 끝내면 안되겠냐는 어르신들을 보며 
그림 수업이 참 달게 느껴졌습니다. 

다음주는 공휴일로 한 주 쉬게 되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