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자람책놀이터] 도서관 검색기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긴글)

(글쓴이:정한별사회복지사)

 

도서관 검색기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소설가 박완서는 소설 초고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작가입니다.

원고지 고작 10장을 쓰기 위해서는 50, 100장의 파지가 나온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휴지 대신 뽕나무 잎으로 뒤를 닦던 작가는 종이가 아까워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컴퓨터의 문서작성 기능은 작가의 이러한 불편함을 일시에 덜어주었습니다.

파지 한 장 안 내고 마냥 뜯어고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다 하였습니다.

컴퓨터가 고장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어느 날 오랜 기간 사용한 컴퓨터가 망령이 들었습니다. A4용지 서른 장이나 되는 원고를 감쪽같이 집어 삼켰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기술자를 불러도 꿀꺽한 원고를 살리지 못하는 컴퓨터를 원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수작업을 할 때가 그립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이 나이에 왜 한 자루의 펜 대신 이런 거창한 기계는 써가지고 종당엔 이런 모욕까지 당해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분했다.
                                                                                           
                                                                                                              - '나의 웬수덩어리' 중에서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이고, 깔끔해졌지만 수작업이 그리운 것을 왜일까요?

그 좋은 순기능에 제동이 걸렸을 때 어찌해볼 도리가 없이 전문가에게 의존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전문가라는 것이 대단하지도 않지만 의지하지 않으면 단 한글자도 더 써나갈 수 없는 그 통제 밖의 영향에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신촌 일대의 헌책방을 돌아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일단 좁은 문을 밀고 들어가면 더 좁은 복도와 빽빽한 서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방 주인의 체계에 따라 책들은 나름대로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옷깃 날리며 몇 번만 쓰윽 훑어보아도 어디에 한국 소설이 있는지, 사회운동책이 있는지, 요리책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마음에 드는 곳에 멈춰 서서 한 권씩 책 이름만 보고 뽑아 읽습니다. 꼭 찾고 싶었던 책이 있다면 좀 더 반가운 마음으로 꺼내 쟁여두기도 합니다. 그렇게 작은 서가를 몇 번 뒤지면 마음에 드는 책 한 두 권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늘 그렇게 책을 찾아왔습니다.

요즘들어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에는 검색이 있어 원하는 책을 금방 찾을 수 있어 편리하긴 합니다만, 헌책방에서 늘 그렇게 눈으로 책장을 뒤지며 책을 찾아도 보물 같은 몇 권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동네 작은 도서관인 꿈자람 책 놀이터에서도 책을 검색하여 찾을 수 있습니다.

도서분류법에 따라 도서가 분류되어 있고,

청구기호에 따라 아주 세세하게 꽂혀 있습니다.

책 이름만 대면 검색을 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도서관에 없는 책은 다른 도서관에 신청하여 받아볼 수도 있습니다.

 

조그마한 도서관이지만 참 편리합니다.

웬만한 서점에 있는 책들은 구해서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원하는 책을 5분 내로 찾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장서를 점검하면서는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이고, 깔끔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켠이 여전히 허전한 것은 왜일까요?

 

편리한 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일 겁니다.

어려워진 만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정교한 분류 체계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만이 책장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1년 넘게 당직을 섰던 직원들도 대출 반납 시스템을 처리하면서 자꾸 실수합니다.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시는 어르신들께는 넘지 못할 산 같은 존재입니다.

 

책이 있고, 사람이 있는데 시스템에서 길을 잃어 책을 건네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합니다. 늘 주변 정리를 잘 하시는 깔끔한 성격의 어르신이지만 책장 정리하는 방법이 어려워 가만히 둘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공간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일에 능하신 어르신들이 시스템 앞에서는 걸음마단계가 됩니다. 다른 도서관 책을 인터넷 상에서 어떻게 대출할 수 있냐는 전화문의에 주눅이 듭니다. 무력해지고 어려워집니다. 책을 정리하는 일은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 사서나 자원봉사자가 전담할 일입니다.

 

 

도서관에 검색 기능이 없다면 어땠을까요?

 

내 집이 아닌 공공 도서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기본임을 압니다.

십진분류표라는 공식 체계와 대출반납 및 회원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수라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구나 어질러져 있는 책장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으면.

누구나 수기로도 대출과 반납을 할 수 있었으면.

그래서 정리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이 주눅들지 않고 실컷 일하실 수 있었으면.

도서관에서 하는 일이, 영리한 몇 명의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면.

헌책방에서처럼 큰 분류 속에서도 보물같은 책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지만 소설가 박완서가 말하였듯, 이제는 돌아갈 수는 없는 시절임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더 열심히 책을 정리하고 시스템을 익힐 것입니다.

다만, 높은 장벽을 오르기 전에 과연 우리가 올라갈 수 있을까짧게 한숨을 미리 쉬어 봅니다.

댓글(1)

  • 김은희
    2019.05.17 16:12

    나에게도 헌책방처럼 아나로그 감성이
    더 정겹습니다.
    핸드폰(컴퓨터) 하나로 모든게 해결되고,
    바코드로 분류되는 세상에서
    하나씩 배워가며
    신세계와 마주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습득해갑니다.
    어느날엔가는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싶은 장벽도
    너무 당연스럽게 이용하고 이뤄내는 날이 오겠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