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들] 설날 잔치 준비1 | 당사자의 속도에 맞추기

(글쓴이 : 정민영 사회복지사)

 

당사자의 속도를 살펴보고 맞추기

 

2021년부터는 전 직원이 함께 4대 사업을 시작합니다.

'동네사람들'은 4대 사업 중에 하나로 지역주민이 동네잔치를 구실로 이웃과 인정을 나누는 사업입니다. 

 

이번 신축년 설날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궁리했고

마침 풀꽃향기에서 대량의 떡국떡을 복지관에 후원해 주셨습니다.

 

떡국떡 설날 잔치 제안하기 참 좋은 구실입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힘드니 개인이 떡국 끓여서

이웃에게 마음 전하는 소박한 형태로 진행합니다.

 

# 허은숙 님

지역주민의 소개로 손혜진 팀장님과 함께 허은숙 님을 만났습니다.

허은숙 님이 동네에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설날 잔치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복지관이 지향하는 방향과 설날 잔치를 하는 이유를 설명드렸고 떡국을 끓여서 이웃에게 전하기로 하셨습니다. 

 

"허은숙 님 떡국을 끓이시면 누구에게 전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사회사업가는 '관계주선사'입니다.

 

허은숙 님께 동네에 이웃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허은숙 님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년배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아직 신입 직원이다 보니 허은숙 님에게 소개해드릴 주민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곁에있기 팀원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풀꽃향기 회원이신 김경옥 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권대익 주임님이 김경옥 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기로 했습니다. 

 

며칠 뒤, 허은숙 님을 만나 설날 잔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논했습니다. 

허은숙 님은 떡국떡이 있으니 계란지단, 김가루, 대파 등 떡국에

들어갈 나머지 재료들은 준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잔치 날짜, 시간, 장소도 묻고 의논했습니다.

 

"떡국 끓여서 주원이랑 같이 전하러 가면 좋겠어요."

 

허은숙 님의 막내딸 주원이도 떡국잔치에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주원이가 동네에 아는 어른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박해순 어르신

박해순 어르신은 복지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시는 어르신입니다.

방화동에 사신지는 오래되셨지만 복지관에서 하는 노인 일자리에만 계속 참여해 오셨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복지관에서 근무하셨지만 복지관이 하는 역할과 운영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습니다.

어르신께 복지관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 설명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 공감해 주셨고 잔치 제안을 받아주셨습니다.

 

며칠 뒤, 박해순 어르신을 다시 만나 설날 잔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논했습니다.

 

"선생님, 내가 주말에 생각을 해봤는데 떡국을 끓이는 것보다 떡국떡만 나눠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 보니까 음식을 해서 주면 사람들이 버리는 모습을 많이 봤어.

떡국 해서 주고 버려지는 것보다 떡국떡으로 주면 본인들 입맛에 맞게 해서 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나는 집에서 평소에도 음식을 잘 안하기도하고. 선생님 생각은 어때요?"

 

원래는 떡국을 끓여서 전하기로 했었는데 어르신께서 떡국떡만 나눠주자고 하셔서 순간 당황했습니다.

어르신이 제안해 주신 방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방법만 조금 바꾸는 것이지 어르신이 이웃과 떡국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음식이 버려질까 염려하시고 환경을 생각하시는 어르신의 생각에도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어르신이 평소에도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하시다 보니 떡국 끓이기 어려운 상황도 이해했습니다.

 

이후에도 어르신과 오랫동안 의논했고 떡국을 끓이지 않고 떡국떡이랑 엽서만 준비해서

이웃에게 마음 전하기로  함께 결정했습니다. 

 

사실 어르신께서 떡국을 끓이지 말고 떡국떡만 나눠주는 걸로 계획을 변경하자고 하셨을 때 당황했습니다.

처음에 잔치를 제안했던 제(사회사업가)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습니다.

당사자의 속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사회사업가의 속도에 맞추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성찰했습니다.

 

작년 추석에 소박한 잔치를 하면서 사회사업하는 재미와 감동을 몸과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고 사회사업하는 힘이 납니다.

이번 설날 잔치도 기대가 컸고 잘 거들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보니 어르신의 속도를 미처 살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르신과 설날 잔치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회사업가의 속도에 맞춰 당사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속도에 맞춰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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